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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이 또한 예배요 섬김이니

이 또한 예배요 섬김이니

- 백소영 (강남대 기독교학과 초빙교수)

 

    가장 낯선 개강이다. 오프라인 강의는 행정상 두서너 주 이후로 연기됐지만, 수업 일수를 맞추려다 보니 대부분의 대학이 이번 주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다. 평소 보충수업이나 온라인 수업 영상을 찍은 경험이 있어서 처음에 공지를 받았을 때는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이상한 거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 학기 동안 함께 공부하게 된 백소영입니다.” 수십 번 반복했던 이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카메라만 빤히 쳐다보다가 결국 도입부만 몇 번을 다시 찍었다. ‘마주봄의 부재 상황.’ 유난히 불편했던 감정에 ‘진단명’을 내려 본다. 첫 시간, 학생들이 수업 내용과 교수의 성향을 궁금해하면서 옹기종기 강의실에 앉아 앞문이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개강 첫날 강단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기 직전에 나는 언제나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어떤 얼굴들, 어떤 사연들, 어떤 질문들을 마주하게 될지, 그걸 처음 대면하는 순간이 곧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혼자 찍는 동영상 강의라니. 내가 마주보며 확인하고 읽어내야 할 눈빛들이 없다. 내 말을 정확히 담아주는 영상기기 덕분에 정보는 전달할 수 있겠으나, 핑퐁과도 같은 주고받음의 에너지가 흐르지 않는다. 아, 그래서 그렇게 낯설었던 거구나.

 

    지난주일, 대한민국 대부분의 교회도 상당히 낯선 예배를 드렸다. ‘무려’ 온라인 예배라니.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 매체 환경의 변화에 발맞춘 최첨단 예배 시도는 아니었다. 일파만파 점점 더 감염자 수가 늘어가는 코로나19의 방역 차원에서 밀폐된 공간에 다수의 사람이 모여 앉는 상황에 대한 자제가 요청됐고, 많은 교회가 이에 협조하면서 벌어진 풍경이었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 설교하는 목사님도 당황스러우셨을 터이고, 모니터 앞에 앉은 교인들도 낯설긴 마찬가지였을 거다. 물론 주일 예배의 경우 ‘낯섦’만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주일성수’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오프라인 설전이 오갔다. 코로나19로 죽더라도 주일성수를 하는 것이 신앙이요 예배자의 자세라는 주장부터, 우리가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일인 관계로 이러한 특수 상황에서는 예배 형식을 달리하는 것이 오히려 온전히 주일을 성수하는 것이라는 해석까지 의견들이 다양했다. 나 역시 내 신앙과 신학에 기초한 답이 있었으나, 문득 사회학적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이번 주 교회들은 어떤 결정을 할까.’ 하여 말을 보태기보다는 그다음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감사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어디서 예배드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어떻게 예배드리느냐가 중요하다.“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요 4:23)교회를 헐뜯는 자들은 결국 헌금 때문이 아니냐며 비아냥거렸지만, 주초부터 들려오는 특별한 주일성수 이야기에 마음이 가득 찬다. 강남의 한 대형교회는 당일 주일 헌금 전액을 특별헌금으로 결정해 코로나19의 피해가 가장 극심한 대구·경북 지역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인이 섬기는 작은 교회는 교회가 위치한 지역에 고립된 노약자들에게 마스크와 식재료를 나누는 ‘주일’로 성별해 드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게 말이다. 예배야 온라인이면 어떠한가, 사람을 살리는 이웃 사랑이 오프라인이면 족하다. ‘사회적 거리’를 말하는 시점이지만, ‘거리’가 예배와 섬김의 방법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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