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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예배 금지’보다 무서운 ‘내부의 적’

예배 금지’보다 무서운 ‘내부의 적’

 

크리스천투데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만큼, 예배를 금지함으로 인한 충돌도 크건 작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근본적·거시적으로 이 압박들은 교회에 진정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 어떤 권력도 무력도 교회를 무너뜨리진 못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를 볼 때 그들이 교회를 억누른 듯했어도 그것은 잠시뿐이었고, 오히려 교회는 그 박해들을 통해 더욱 성장했다. 그래서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교회가 정작 걱정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 바로 ‘예배 경시 풍조’다. 물론 기독교인들 중에 대놓고 예배를 경시하는 이들은 없겠지만,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듯이 사소한 말이나 행동이 시나브로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리고 그 풍조는 이미 대표적으로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교회의 ‘모임’과 ‘예배’에 대한 지나친 폄하와 비방이다.

     예배를 모여서 드려야 한다는 그들의 논거는 꼭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모이지 않아도” 진정으로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물리적으로 모이지 않는 예배”는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임시방편이지,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말씀 선포와 교육, 친교, 봉사 등은 교회의 본질적 기능이고, 이는 성도가 모이지 않으면 온전히 수행될 수 없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초대교회 역시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였다. 당장 말씀 선포만 하더라도 아무리 온라인으로 예배를 잘 드린다 해도 실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 만큼의 집중력과 경건함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둘째는 일부 목회자들의 자포자기다.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온/오프라인 예배를 병행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여론의 공격이 두려워 너무 성급하게 100% 온라인으로 전환하거나, 혹은 기술과 역량의 문제로 아예 온라인 예배마저 포기하고 다른 교회들의 온라인 예배에 자신의 양들을 위탁해 버리는 경우다. 후자의 경우 그 고충이 이해는 된다. 그러나 찾아보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처럼 IT 기술이 극도로 발달되고 보편화된 시대에 살면서, 목양을 위해 그 정도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안타깝지만 그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셋째는 편리함에 길들여져 버리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온라인 예배는 차선이지 최선이 아니다. 그런데 부지불식 간에 이 편리함에 익숙해져, 이 사태가 끝난 뒤에도 “한 두번 쯤이야” 또는“하나님께선 교회 건물 안에만 계시는 게 아니야”라면서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거나 혹은 아예 드리지 않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 거룩과 경건과 기본마저 무너뜨리면서 형식주의 타파라고 합리화해 버리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의 ‘가나안 신자’들의 범람이다. 이러한 풍조들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갑자기 새롭게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 있어 왔던 추세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다 가속화되고 뚜렷해졌을 뿐이다. 따라서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해도 이 영적 바이러스는 계속 남아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치명적 손상을 줄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교회 지도자들은 이 또 다른 위험 요소를 통찰하고 성도의 영적 면역력을 강화하는 일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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