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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 환생과 윤회는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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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환생과 윤회는 사실일까?

환생과 윤회는 사실일까?

 

박명룡 목사 <청주 서문교회 담임·기독교 변증가>

 

  ‘신과 함께-죄와 벌’ ‘신과 함께-인과 연’은 요즘 한국에서 가장 핫한 영화다. 영화는 내세에 대해 생각하게끔 모티브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저변에 깔린 철학 사상으로서 윤회와 환생은 기독교인으로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윤회란, 삶이 일회적이지 않으며 해탈 전까지는 생사를 수없이 반복한다는 힌두교와 불교의 교리다. 환생은 사람이 죽은 뒤 자신의 업에 따라 다시 사람이나 동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윤회와 환생은 과연 합리적인 생각일까. 몇 가지 논리적 문제점이 있다.

 

  첫째, 최초의 시작이 없는데 어떻게 세상이 시작될 수 있을까. 윤회는 우주의 시작과 인생의 시작을 설명할 수 없다. 계속해서 도는 순환적 세계관이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우주에 시작이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우주는 시작과 끝이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하는 윤회는 우주의 시작을 설명할 수 없다.

 

  둘째, 환생은 인간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없다. 환생은 사람이 자신의 업에 따라서 동물, 식물 혹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환생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의 차이점을 설명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볼 때, 식물과 곤충 그리고 동물은 질적인 차이가 있다. 식물은 의식이 없지만 동물에겐 있다. 동물에게는 의식이 있지만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자의식이 없다. 도덕성도 없다. 그런데 만일 내가 죽어서 개나 돼지, 벌레, 식물로 태어났다면 지금의 ‘나’와 동물이나 벌레가 된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달리 말해 환생에선 지금의 나와 환생해서 새로 태어난 나는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 되기 때문에 인간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없다. 이번 생의 나와 다음 생의 나는 연결점이 없다.

 

  셋째, 제일 처음 태어난 사람이나 짐승은 과연 무슨 업보 때문에 각각 다른 신분과 형태로 태어나게 됐는가?. 현재의 모습은 과거의 업보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최초에 태어난 사람과 짐승, 벌레나 식물은 무슨 업보 때문에 그 모습으로 태어나게 됐는가?

 

  넷째, 환생의 가장 큰 장점은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환생과 윤회는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실질적으로 윤회는 기회를 박탈한다. 예컨대 과거의 죄 때문에 맹수로 태어났다면 그 맹수는 무슨 수로 선한 업보를 쌓을 수 있겠는가. 갈수록 더 악한 업보만 쌓게 된다.

 

  다섯째, 환생의 가장 큰 약점은 과연 누가 업보에 따라 환생을 결정하는가이다. 누가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그 판단은 염라대왕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 윤회와 환생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려면 반드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이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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