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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 가정예배가 살아야 아이들 신앙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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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가정예배가 살아야 아이들 신앙도 산다

가정예배가 살아야 아이들 신앙도 산다

가정예배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자

한국성결신문 1월 30일자

 

    소크라테스 시대, 역병이 기승을 부렸다. 기원전 431년이다. 아테네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8만 명이 쓰러졌다. 역병은 아테네 전통사회를 해체한다. 1300년대 초,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페스트가 시작된다. 1340년대 말 유럽으로 확산됐다. 비단과 향료를 실어 나르던 실크로드가 페스트를 실어 나른다. 아이러니다. 유럽에 상륙한 페스트는 1351년까지 유럽 전체 인구의 30~40%를 몰살시킨다. 중세 유럽은 페스트로 초토화된다. 그리고 또 다시 코로나19, 재탄생을 촉구한다. 탈피(脫皮)하라는 거다. 뱀은 허물을 벗지 않으면 죽는다. 교회도 가정도 그렇다.

 

    비대면 사회가 가져다 준 선물이 영상예배다. 처음 한 두 번은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는 담임목사가 신기했다. ‘우리 목사님도 TV에 나오네.’ 교회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와 줌(zoom)을 찾았다. 그러다가 모두들 홈 쇼핑족이 되었다. 리모콘으로 설교자를 고른다. 이제는 설교도 ‘구독’한다.

 

    기호식품을 고르듯 제각기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입맛을 따라간다. 신앙의 편식현상이 가속화된다. 가족은 따로국밥 신세가 된다. 한 지붕 세 가족 네 가족이 된다. 시간이 가면 악마에게도 길들여지는 것이 사람이다. 점점 교회의 대면예배가 귀찮아진다. 코로나 시대의 모니터 예배에 꾸역꾸역 길들어간다. 그러면서 어느새 설교를 모니터링한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병원의 환자가 아니라면 제발 모니터를 끄자. 가정예배가 답이다.

 

    도우게비츠(Dowgeiwicz)는 말한다. “유대교는 어느 시대의 박해에도 살아남았다. 종교적 생활의 실질적 구성과 기능이 모두 가정 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수 세기가 지나는 동안 수 많은 회당들이 파괴되 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모든 유대인들에게는 그 선조들의 신앙에 대해 마땅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교는 언제나 가정에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가정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공부하기 위해, 그리고 이웃을 환대하기 위해 구별된 작은 성소(聖所)였다.”

 

    가정기도회를 강조했던 루터는 예배를 갱신하면서 가정예배의 실행을 강조한다. 만인제사장직에 근거해 부모들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우뚝 서야 한다. 교회는 가정예배 교육을 통해 가정을 세워야 한다. 가정예배는 1:1 맞춤형 신앙과 기도교육이 가능한 시스템이 된다. 성(聖) 가정의 실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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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가 살아야 아이들 신앙도 산다 2021.01.3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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