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나무
(절망적 순간에도, 우리를 위대한 작품으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
▲신성욱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
수년 전, 존 번연(John Bunyan)의 위대한 작품 <천로역정>에 나오는 배경인 영국 베드포드(Bedford)를 방문한 적이 있다. 존 번연은 금지됐던 설교를 했다는 죄목으로 6개월 선고를 받고 말았다. 사랑하는 그의 아내가 런던시의 재판관이 머물고 있던 여관으로 찾아가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그 여관 앞에서 당시 애절하게 부탁했을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사진을 찍은 기억이 생생하다. 번연 부인의 부탁에 시에서 온 재판관은 좋게 해결해주겠노라고 답했다. 그런데 막상 재판이 열리자 지방 판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무려 12년이란 말도 안 되는 형을 선고하고 말았다.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6개월 감옥살이로 끝냈을 것을 부인이 부탁하는 바람에 12년 감옥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6개월의 24배나 많은 형을 더 살게 되었다 생각해보라. 혹을 떼려다 완전 혹을 붙인 셈이다. 12년간 옥살이를 한 그곳은 지금 땅바닥에 기록만 남겨진 채 번화가로 바뀌어 있었다. 원래 시에서 온 판사는 번연 부인의 애절한 호소에 마음이 움직여, 번연을 무죄 석방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미리 알아챈 지방 판사들이 시 판사의 비리를 왕에게 보고하겠다고 협박해, 무려 12년형을 선고받고 만 것이다.
이렇게 억울한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는 번연에게 12년형을 선고한 시 판사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 왜 그럴까? 그가 아니었다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출간된 불후의 명작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6개월 형을 살았다면, 과연 <천로역정>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물론 시에서 온 판사에게 번연이나 그 아내를 위한 마음이나 <천로역정> 독자들을 위한 배려의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오직 자신의 비리가 왕에게 들어가 해를 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지방 판사들도 기대하지 않던 12년형을 선고한 것 뿐이다. 그러면 우리가 진정 감사해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당연히 하나님이다. 자신의 비리가 들통나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운 나머지 터무니없는 판결을 내린 시 판사의 나쁜 재판을 선용하셔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천로역정>이란 위대한 작품을 탄생케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억울한 일을 당해 낙심 중인 분이 있는가?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없어 절망 중인 분이 있는가? 힘든 가운데 더 견딜 수 없는 일을 당해 완전히 삶의 의욕을 잃고 있는 분이 있는가?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기억하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모든 것’이란 말에 주목하자. ‘좋은 것’뿐 아니라, ‘나쁜 것’도 포함됨을 기억하자.
아프리카 아카시아 나무나 존 번연의 경우처럼, 어떤 절망적인 순간에도 우리를 위대한 작품으로 빚어 가시고야 마는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계획과 의지만 바라보고,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복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