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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 한국교회는 왜 낙태에 무관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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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한국교회는 왜 낙태에 무관심할까

한국교회는 왜 낙태에 무관심할까

▲박상은 박사 (샘병원 원장, 전 국가생명윤리위원장)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회원들이 지난 7일 서울 국회 앞에서 정부의 낙태죄 관련 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낙태는 한국교회의 민낯이다. 갈기갈기 찢긴 채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태아의 모습에서 분열되고 비난받는 한국교회와 나의 모습을 본다. 낙태에 대한 강의를 위해 교회를 섭외하면 대부분의 목사님이 원치 않는다. 당회와 여선교회가 원하지 않는다며 다음 기회로 미루려고 한다. 사정사정해서 청년부 소그룹에서라도 강의할 기회를 얻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여러 통계에서 드러나듯 기독교인의 낙태 비율은 일반인과 전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일부 통계에선 기독교인이 조금 더 많이 낙태하는 것으로 나왔다. 가톨릭 신부와 함께한 TV 토론회에 나갔더니 진행자는 필자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고 낙태를 찬성하는 쪽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한국교회 강단에서 낙태에 대한 말씀이 선포된 적이 있었던가. 매일 3000여명의 태아가 낙태되고 그중 기독교인에 의해 500여명의 태아가 죽임당하는 상황인데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땅에 기독교인의 자녀로 보내진 귀한 생명이 미처 예배당을 밟지 못한 채 피투성이가 돼 찢어져도 우리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예수님은 크리스마스에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그보다 9개월 전 작은 배아로 마리아의 캄캄한 태중에 오셔서 긴 세월 태아로서 삶을 사셨다. 왜 그러셨을까. 태아가 얼마나 소중한 생명인지 우리 모두에게 극명하게 보여주심이 아닐까.“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자(태아)에 더 관심을 두고 돌봐야 함을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이 땅에서 가장 나약한 생명이 누구일까. 배 속의 태아야말로 엄마와 주위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가장 작은 자일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도 어쩌면 가장 작고 연약한 태아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실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년 110여만명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듯 갈기갈기 찢어 살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기독교인 남녀를 통해 매년 30만여명의 태아들이 이 땅에 보내지지만 우리는 낙태로 그들을 천국에 돌려보내고 있다. 차디찬 수술대 위에서 외치는 태아의 비명을 듣고 있는가. 그곳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는가. 한국교회에 긴급히 제안한다. 성탄절이 되기 두 달 전인 오는 25일 주일을 태아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태아 생명 주일’로 지켰으면 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날도 중요하지만, 태아의 삶을 사신 ‘미리 오신’ 주님을 묵상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강단에서 선포하자. 정부가 지난 7일 입법 예고한 낙태법 개정안이 곧 국회로 보내진다. 한 번의 말씀이라도, 한마디의 외침이라도 강단에서 생명의 울림으로 울려지길 간곡히 호소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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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는 왜 낙태에 무관심할까 2020.10.1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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